이랬던 강아지가 지금은 제 옆에서 자고 있네요(끙끙 잠꼬대를 하며).
8월 1일 경 서산시동물보호센터에 입소했던 믹스견이 9월 9일 서울시 성북구로 이사했습니다. 새 이름도 얻었습니다. '모리'라고 합니다. 메멘토 모리의 그 모리 맞습니다. 화요일에 데려왔기 때문에 『모리와 함께한 화요일』에서 따왔다고 할까 했지만, 그 책을 썩 좋아하진 않아서요. 역시 morrie보다 mori입니다.
왜 데려왔냐는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. 더 정확히 말하자면, '왜 벌써'인지에 대해서요. 데려온 후에야 생각한 것이지만, 대체로 저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더라고요. 일단 저지르고, 감당하기. 상실을 견디는 대신 곧바로 채워버리기. 그것 역시 일종의 도피 행각이라는 걸 넌지시 알기야 했습니다. 빈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는 대신 뭐라도 쑤셔넣기. 맞지 않는 퍼즐을 주먹으로 내리쳐서라도 끼워 넣기.
사실은 모리를 데려온 날 알았거든요. 모리는 어떻게 해도 란마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요. 모리가 란마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강아지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. 란마가 주던 것을 모리는 절대 똑같이 줄 수 없다는 것을, 이 당연한 진리를 정말 저는 몰랐던 걸까요.
재미있는 건, 란마 역시 그런 이유로 데려왔더라는 사실입니다. 오랫동안 잊고 있어서 몰랐는데요, 란마 역시 누군가의 대체였습니다. 란마처럼 모리를 데려왔고, 모리처럼 또 누군가를 계속해서 제 옆에 붙여 놓았습니다. 그런 삶에서 제가 무엇을 배우지 못했고 무엇을 놓쳤는지, 기회를 날린 사람으로서는 영영 알 수 없겠지요. 제가 치뤄야 할 대가는 이것입니다. 상실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. 그러나 무엇도 배우지 않겠다고 버티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한 켠에 있습니다.
저는 재갈을 물고 태어난 개 같습니다. 이것을 문 채로 저는 앞만 보고 달립니다.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이것이 저를 모질게 몰아댑니다. 하지만 이렇게 쓰면 핑계가 되고 말지요. 스스로 재갈을 물었습니다. 재갈을 벗지 않은 것도 저의 선택입니다. 턱으로 줄줄 흐르는 침을 닦지 않은 채 살아가는 저를 보고 눈살 찌푸릴 수도 있겠습니다. 자초한 일입니다.
p.s. 모리는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비글 믹스입니다. 그렇지 않고서야 이 미친 에너지의 근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. 정말 혼을 쏙 빼놓는다는 표현이 딱입니다. 어제는 성북동에서 산책하다 만난 다른 비글 견주에게 물었습니다. 하루에 산책을 몇 시간 하시냐고요. 그랬더니 그분이 말했습니다. 지금 산책이 오늘 다섯 번째라고요... 혹시 성실해지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. 하루동안 모리를 빌려드릴게요. 매분 매초에 할 일이 생겨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.
p.s.2. 직접 강아지를 데려올 능력이 안 되어서(무면허 이슈)... 서산까지 든든한 동행이 되어주신 성북동 대모대부에게 이 영광과 혼란을 바칩니다. |